문들의 연속
“문은 많아졌지만, 만남은 줄었다.”
도시의 단면을 그리면, 그 위에는 수많은 문이 층층이 겹쳐진다. 그 문들은 단지의 경계를 만들고, 사적 공간을 지키며, 안전을 보장하는 듯하지만, 동시에 사람 사이의 거리도 점점 더 견고히 만든다.
단지 출입문 – 외부를 의심하는 시작
도시의 첫 문은 늘 경계로 서 있다. 단지의 정문에서 경비원은 지나가는 사람의 눈빛과 걸음을 살핀다. 그는 직업적으로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사람이다. 그가 쥔 리모컨 하나로, 타인의 접근은 허락되거나 거부된다. 보안이라는 이름 아래, 공동체는 이미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 채로 존재한다. 이 문은 ‘환대’보다 ‘필터링’의 문이다.
아파트 로비 출입문 – 통제된 환영
택배기사는 카트를 끌고 자동문 앞에 선다.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는 화분과 조명이 깔끔히 정돈된 로비가 보인다. 그러나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주민의 호출이나 일회용 출입번호가 필요하다.
로비는 ‘공용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, 사실상 ‘반(半)사적 공간’이다. 주민에게는 일상의 시작이지만, 외부인에게는 한계의 문턱이다. 자동문은 친절하게 열리지만, 그 친절은 프로그램된 조건 안에서만 작동한다. 이 문은 ‘환영의 형태를 한 통제’의 문이다.
엘리베이터문 – 시선의 침묵
동 내부로 들어오면,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피한다. 공간은 닫혔고, 침묵은 예의가 되었다. 버튼을 누르는 손끝과 스마트폰 화면만이 이 공간을 채운다. 문이 닫히는 순간,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빠져나와 오로지 자기 안으로 침잠한다. 이 문은 ‘무관심’의 문이다.
현관문 – 가장 가까운 거리, 가장 두터운 벽
현관문은 한때 ‘맞이함’의 공간이었다. 문 앞에서 신발을 벗고, 손님을 들이며, 세상과 집이 만나는 경계였다. 하지만 이제 그 문은 철제 프레임과 스마트락으로 단단히 봉인된 ‘프라이버시의 장치’가 되었다. ‘누구세요?’라는 한마디조차도 경계의 언어가 되었고, 문틈 사이에는 인간적인 온기 대신 인터폰의 영상이 자리한다.
방문 – 가족의 분절
마지막 문은 방 안으로 이어진다. 가족조차 각자의 문 뒤에서 따로 산다.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이어폰 소리와 키보드 타건음이 가족의 대화다. 개인의 영역은 강화되었고, ‘함께 있음’은 단순한 물리적 공존이 되었다. 이 문은 ‘고립의 안식처’다.
닫힌 문과 열린 마음
단면 속 다섯 개의 문은 도시의 축소판이다. 문은 물리적이지만, 그 너머엔 심리적 구조가 있다. 우리는 안전을 위해 문을 늘렸지만, 그만큼 마음의 경계도 높아졌다. 그러나 문이 존재한다는 것은 또한 ‘열릴 수 있음’을 전제한다. 닫힌 문이 언제나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. 언젠가 누군가의 노크에 대답하기 위해, 문은 여전히 경첩 위에서 기다리고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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